제1367호
나의 가증스러운 믿음
글쓴이/봉민근
때로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기도가 가증스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산다면 하나님께서 그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러나 나의 삶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 한다는 것은 말뿐이고 꿈이며 현실로 돌아와 보면
나는 여전히 하나님보다 나의 의지를 믿고 사람들을 의지하며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위선적으로 사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말뿐인 믿음! 입으로만 하는 신앙고백!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일까?
나의 신앙의 단면을 보면 외식이라는 안경 넘어의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의 삶의 한가운데 모시고 영으로 느끼고 피부로 느끼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닌
너무나도 추상적인 믿음을 지닌 나의 모습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한심스럽다.
믿음도, 은혜도, 그리고 모든 복도 하나님이 주시건만 나는 나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쟁취하려고
몸부림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절망하고 좌절하며 "기도해도 소용이 없네"하고
마음속으로 믿음을 벗어난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희 안이 성령의 전이라 하셨지만 진정으로 성령님을 내 속에 모시고 살지 못한 연고로
말로는 하나님의 뜻을 부르짖지만 늘 내 뜻대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 황당하고 가증스럽다.
믿음은 추상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상상을 하며 꿈꾸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현실이고 실제적이며 가상이 아닌 실존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맡기고 산다는 것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회개해야 한다.
말로만 떠벌이는 신앙을 넘어서 삶으로 증거 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때까지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나도 한 번쯤 주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크도다"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겠나!☆자료/ⓒ창골산 봉서방
모든 선악의 기준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인정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선악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자신이 인정하는 것만이 선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본성상
인간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을 의심하거나 거부하면
굉장한 불쾌감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신자는 모든 선악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자는 말씀대로 살기를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
그분의 뜻이 담겨 있고,
말씀 안에서만 판단의 근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6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든 시간과 역사를 아우르는
최고의 가치이자 능력입니다.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그리고 모든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 있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풍성함과
깊음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이 모든 지혜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발현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작정과 창조와 구속,
그리고 섭리까지 하나님의 모든 경륜에 있어서
최고의 지혜는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올바로 아는 자들만이
최고의 지혜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4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장 좋은 것들을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합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이것저것 다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이 땅의 것들은 영원하지도 않고
본질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심으로써
당신만이 진정한 선물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거부가 된 것과,
솔로몬이 누린 부귀와 영화와 같은
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신자가 추구해야 할 본질이 아닙니다.
신자가 추구해야할 것은 바로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 그분 자체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들의
참된 선물이며 진정한 복입니다.
그래서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이야
말로 인생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인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시16:2
미련한 자의 입
신자는 미련한 자와의 대화에서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미련한 자는
상대방을 자신의 미련함에 끌어들이려
우매한 말들을 쏟아내지만,
지혜자는
그 우매함의 끝을 알기 때문에
미련한 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는 자신만의 프레임이 있습니다.
그곳에 동조자를 모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많은 말들의 향연을 벌이지만,
결국에 남는 것은 허무일 뿐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우매한 자의 기준에 따라 대답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의식하며 말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늘 말씀을 생각하지만,
미련한 자는 말씀에서 멀어지기만 합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잠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