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가는자 2023. 6. 3. 06:30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왜곡

 

글쓴이/봉민근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설교를 들어도 서로의 생각들이 다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천주교의 어느 사제의 말이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고 지옥에 보낼 수 있느냐는 논리다.
자녀가 아무리 잘못하였을지라도 지옥 보내는 부모는 없다는 것이다.
예수 믿어야 천국 간다는 말은 사이 비중에 사이비라고 했다.
사랑의 하나님은 절대로 지옥 같은 것은 만들지도 않았을뿐더러 지옥은 없다고 강변을 했다.


선하게 살면 불교신자든 기독교 신자든 모두 천국에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까?
복음을 왜곡해도 너무나 왜곡한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경의 말씀이 왜곡되고 하나님의 뜻이 잘못 전해지는 지극히 인본주의적으로 흐르는
오늘날에는 오히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사이비 취급을 받는 시대다.


선하게만 살면 구원받는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과 배치되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해서는 안된다.
공의를 빼면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이 된다.
죄지은 자는 벌을 받고 잘한 자는 상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다.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오지만 늘 말씀을 자기의 입맛에 맞게 왜곡을 한다.
그럴듯하고 비슷하다고 정품으로 인정을 해서는 안된다.
진리는 불변하며 하늘이 두쪽이 나도 변하거나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진리를 위하여 사는 자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비진리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고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성경을 자신의 구미에 맞게 해석하는 자가 이단이요 사이비다.


그 누가 뭐라고 하여도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경의 구절들이 이를 증거 하는 것을 우리는 결코 부정할 수가 없다.
성경은 세상의 이론으로 변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믿음이 무엇인가 알아갈 때     

 

믿음은 자신의 힘으로 그 비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느끼는 절망감에서 비롯된다.

- 존 플라벨 -


믿음이 주어지기전에
항상 고통이 수반됩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을
절대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철저한 자기절망감과
무능하고 죄인인
자신에 대한 인식으로 부터 출발합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바닥을 치고
오로지 그리스도에게만 소망을 둘 때에
그 가운데 믿음이라는 것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입니다.


철저한 절망없이
그리스도를 붙잡을 수 없고


철저한 절망가운데 얻어낸 믿음은
어떤 고난이 왔을 때에도
타협하지 않습니다.

 

 

죄를 드러내는 것     

 

 상처란 드러나기 전에는 치료 될 수 없으며
죄란 실토하기 전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 마틴 루터 -


설교가 하는 일은 상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끝없이 상처를 감추려고 합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감추려고 합니다.



그래서 죄를 덮어주는 것만이 치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죄를 덮어버리기만 하면 썩어들어가게 됩니다.



복음이 하는 일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상처를 덮어놓았던 것들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영적으로 맹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에



그리스도의 지혜로 지혜로 지혜로워지고
그리스도의 거룩으로 거룩해지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능력있게 됩니다.

 

 

죄와 싸우는 것     

 

우리 자신의 죄보다 타인의 죄를 아파하는 것이 은혜가 더 크다.
우리가 자신의 죄를 슬퍼하는 것은 지옥에 간다는 두려움 때문이지만,
타인의 죄를 슬퍼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

- 토마스 왓슨 -

타인의 죄를 슬퍼합니까?
아니면 타인의 죄를 불편하게 여깁니까?

타인의 죄가 불편한 사람들은
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죄인과 싸웁니다.


죄인과 싸우는 것은
그 사람의 죄 문제가 해결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니므로
교회 개혁과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죄인이 아닌 죄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뿐 아니라
타인의 죄와도 싸워야 합니다.


죄와 싸우는 자는 화평케하는 자라는 호칭을 얻을 것입니다.


표면상으로 죄와 싸우는 것과 죄인과 싸우는 것은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죄와 싸운다면 우리는 반드시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기도와 설교를 듣는 일은 분명 여러분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방편입니다. 

-  존 플라벨 -

 

우리는 기도하는 것을 중요시 할 뿐만 아니라
바른 기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도 해야합니다.

신앙생활은 내 방식대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제 방식을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방식을 고칠 생각이 없으면서
자기 방식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그것이 힘들지라도 맞춰야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인다면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두 성경에 스스로를 맞추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세상은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같은 죄를 반복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앞에 같은 죄를 반복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말 혐오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오래참으심을 비웃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대신 지신 십자가를 짓밟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믿음있는 자라면 우리의 삶은 결국 두 가지의 길뿐이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모욕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던지
중간은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짓밟지 않기를 원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욕하지 않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인내하심을 비웃지않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라
그것만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죄와 싸우기를 목숨 걸고서 싸워라
순종하기를 목숨 걸고서 순종해라
우리가 기도하고 순종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어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 곳은
우리가 사랑하기위해 순종하는 그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