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번 기도응답 사실일까?    


글쓴이/봉민근


예전에 죠지 뮬러는 5만 번 이상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는 말에 그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엘리야가 기도한즉 3년 육 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기도의 사람 다니엘은 사자굴에서도 살아났다.
저들의 기도는 특별한 사람이거나 우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의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하루에도 기도에 대한 응답을 수도 없이 받고 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도 아침에 무언가를 위하여 기도 했는데 일이 마치기까지 문제가 걷히지를 않았다.


하나님께 좀 섭섭한 마음이 들었고 잠자리에 누우려는 순간 전화가 걸려 왔다.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몇 분만 기다리면 되는 것을 나는 믿음 없음을 하나님 앞에 또 드러내고야 말았다.
사소한 것이지만 나는 하루에도 수도 없이 많은 기도 응답을 체험하고 있다.


다만 내가 기도하지 않고 기도의 양이 적었을 뿐이다.
더 많은 것을 아뢰었더라면 더 많은 응답을 받았을 것이다.


어름 잡아 하루에 열 번의 응답을 받았다면 1년이면 3만 6천5백 번은 응답받았을 것이라 생각해 보니
평생 5만 번의 기도 응답은 아주 적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도의 응답이 적은 것은 기도의 양이 적었기 때문이다.
큰 것만을 바라고 사소한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매 순간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라는 말씀이다.


구하지도 않고 바라는 어리석은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하나님은 응답의 시기를 조절하시고 그 순서를 정하신다.
응답이 하나님의 뜻과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응답을 받고 안 받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느냐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저 욕심에 이끌려 내 주장만 늘어놓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시기만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은 언제나 옳으시며 합당한 때에 가장 좋으신 것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시다.자료/ⓒ창골산 봉서방

무엇이 죽음에 이르는 병인가?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다. 그리고 절망은 죄다.

그런데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이

소망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홀로서는 믿음의 행위가 필요하고,

또 신앙의 결단이 필요하다.

또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인 동시에,

영생에 이르는 병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세상일에 절망하면서 비로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겸손히 무릎 꿇는 그 순간, 소망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주시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르의 근본 의도는 단지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절망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으로

고침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절망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심령은 죄이며, 영원한 죽음입니다.

세상의 일들과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셨습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십시오.

그 순간 소망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편에서...

하나님은 특히 시편에서 인간의 모든 감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신다.

시편에는 커다란 기쁨과 생생한 고통이 있다.

인간의 모든 감정과 애환이 담겨 있다.

한탄과 통곡이 있고 깊은 지혜가 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가득찬 시들이 있다.

때로는 긍정적이고 때로는 부정적인 하나님 백성의 역사를 암송하는

글이 있고 죄의 고백이 있다.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가 처한 상황에 맞는 내용을 전해주는

성가집과도 같다. 시편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기운을 북돋아 준다.

시편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나약하고 보잘것없으며 심지어 비뚤어졌다 해도- 받아주신다는

그분의 음성이다.

-「나에게 맞는 기도방법 찾기」에서

 

♣시편에는 기도의 전통적인 네 가지 요소인 흠숭. 통회. 감사. 청원이

다 포함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오감과 희로애락의 모든 것이

포함된 성령의 감도로 읊어진 시요 노래이며 찬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늘 시편으로 기도하시고 심지어 십자가 위에서 그 처절한

상황에서 “저의 하나님, 저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시편 22장, 참조)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고난을 이기는 힘

 

기쁨으로 견디려면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 존 파이퍼

It takes God-given power

to endure with joy.

So we pray.

- John Piper

기도는 고난을 없애는 무기이기보다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게 하는 힘을 제공합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은 틀림없지만

기도의 응답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어떤 때는 내가 구한 것을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기도는 즉각적 응답이기보다는

고난의 과정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그 고난을 기쁨으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기도 가운데 어려운 문제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과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리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교만

 

겸손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할 수 없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교만하게 살 수 없습니다.

- 존 맥아더

As we cannot begin the

Christian life without humility,

so we cannot live the

Christian life with pride.

- John MacArthur

신앙의 성패는 겸손의 여부에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을 놓쳐 쓰임 받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이 교만 때문에 망합니다.

교만은 성경이 지적하는 죄 중

가장 근원적인 죄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눈앞에 두지 않으십니다.

교만이란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앉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5절은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가장 거리가 멀어질 때가 바로 교만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주께 드릴 것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이미 그의 것이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그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분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 마틴 루터

We cannot give God anything;

for everything is already His,

and all we have comes from Him.

We can only give Him praise,

thanks, and honor.

- Martin Luther

이 세상 모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의 육신조차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이 땅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뿐입니다.

육신도 잠시 땅에서 빌려 쓰고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욕심부리다 가는 것이 인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만

실제로 자기의 것은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온 맘 다한 찬양과 영광입니다.

 

+ Recent posts